기술기준에 대한 법적 통제
- 구분특집(저자 : 김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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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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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347
- 담당 부서
대변인실
기술기준에 대한 법적 통제
김치환(영산대학교 법학과 교수)
차 례
Ⅰ. 처음에
Ⅱ. 기술기준과 유사개념의 구별
1. 기술기준과 표준의 구별
2. 기술기준과 허가기준의 구별
Ⅲ. 기술기준규율에 대한 우리의 입법태도
1. 실정법상 기술기준에 관한 규율체계
2. 우리의 기술기준 규율체계의 문제점
Ⅳ. 주요외국의 가스안전기술기준 운용체계
1.독일에 있어서의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운용체계
2.미국에 있어서의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운용체계
3.일본에 있어서의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운용체계
Ⅴ. 우리 법제의 개선방향
Ⅰ. 처음에
1)이러한 변화는 규제완화노력의 일환으로 1998년부터 현저하게 나타났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른바 성능규정화의 붐이 일고 있다. 가스기술기준분야는 물론, 건축기준분야, 원자력발전시설의 기술기준분야, 도로포장 기술기준분야 등 기술기준을 다루고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기준의 성능규정화가 실현되고 있다. 성능규정화란 기술기준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법령의 규정방식을 종래의 사양(仕樣)규정에서 성능규정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사양이란 요구되는 수치나 형상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을 말한다. 일을 하는 방법이나 수순이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그와 다른 방법이나 수순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성능규정이란 성능만을 규정하고 그 외에 대하여는 법령이 일체 관여하지 않는 입장이다. 바꾸어 말하면 법령의 규율대상을 ‘사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능’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미 잠깐 언급되었지만 이 차이는 다음의 점에 있다. 구체적인 사양을 규율대상으로 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것(기술)이라도 그 사양에 어긋나면 용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능을 규율대상으로 하게 되면, 성능을 충족하는 것이면 어떠한 사양(기술)이어도 상관없다고 하게 된다. 법은 성능만을 통제하고, 사양은 관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국가 대 민간의 양대구조로 바꾸어서 보면, 국가는 성능만을 통제하고, 사양은 민간이 결정한다는 결론이 된다.
이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기술기준에 대한 일본에서의 규율태도의 변화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기존의 규율방식, 즉 사양규정방식으로는 국제경쟁력에 뒤처지고 현실상황의 규율에 한계를 인식한 때문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규제완화의 필요성은 물론 국제적인 성능규정화의 흐름에도 영향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기술기준분야에서 일고 있는 주요 외국의 입법태도의 변화상황 하에서 우리나라에서의 기술기준에 대한 법적규율의 태도는 어떠한지, 국제적인 기술변동이나 기술수용, 기술개발, 기술교류 등에 둔감한 구태의연한 기술기준운용체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현황을 분석하고 우리 법제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하 기술기준에 대한 우리의 법적 규율의 체계를 살펴보며 그 문제점, 외국의 실정, 우리 법제의 개선방향과 그에 따른 부수적 논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는 먼저 기술기준의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할 것이 요구된다.
Ⅱ. 기술기준과 유사개념의 구별
1. 기술기준과 표준의 구별
기술기준이라는 용어는 실정법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전기나 가스, 건축, 원자력, 항만시설 등 특성상 기술이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기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는 조항은 아무데도 없다.
그런데, 기준과 유사한 개념으로 표준이 있다. 그리고 표준에 관하여는 일응의 법적 정의가 내려져 있다.
2)심지어 기준과 표준을 동의어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3)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1) 국가표준기본법은 ‘국가표준’에 대하여 “국가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정확성, 합리성 및 국제성 제고를 위하여 국가에서 통일적으로 준용하는 과학적·기술적 공공기준으로서 측정표준, 참조표준, 성문표준등 이 법에서 규정하는 모든 표준을 말한다”고 정의한다(제3조제1호), 이에 대하여 산업표준화법에서는 “산업표준화”라 함은 다음 각호의 사항을 통일하고 단순화하는 것을 말하며, “산업표준”이라 함은 산업표준화를 위한 기준을 말한다고 정의한다(제2조). 두 법률은 표준 그 자체에 대한 개념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이들 국가표준이나 산업표준에 대한 정의규정으로부터 표준의 개념요소 내지 개념특징을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4)산업표준화법은 통일성뿐만 아니라 단순화하는 것까지도 표준의 의미에 포함시킴으로써 당해 법에서는 표준개념을 확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5) 말할 것도 없이, 분야나 항목이 다르면 표준도 달라진다. 그러나 같은 분야와 같은 항목이라면 그것에 있어서의 표준은 하나만 존재한다.
6) 다시 말하면, 기준이 표준보다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두 개념정의에 의하면, 우선 표준을 정의하면서 ‘기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국가표준은 “… 과학적·기술적 공공기준으로서 …”라고 정의하고 있고, 산업표준은 “산업표준화를 위한 기준”이라고 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표준과 기준의 구별은 매우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기준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기본이 되는 표준”이라 풀이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두 번째의 특징은 두 경우 모두 “통일성”을 들고 있는 점이다. 국가표준은 “… 국가에서 통일적으로 준용하는 …” 기준이며, 산업표준화는 다양한 종류나 치수, 형상 등을 통일하고 단순화하는 것이다. 통일성이란 다양성을 거부하는 개념이며 따라서 복수가 아닌 단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통일성을 특징으로 하는 표준이라는 존재는 하나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국가표준은 국가에서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며, 국제표준이라고 하면 지상에서 하나만 있는 것이다. 통일성을 결하면 더 이상 표준이 될 수 없다.
(2) 그런데 표준제도의 목적과 통일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가지각색의 것을 통일하는 것이 표준의 목적이 아니다. 통일성은 표준 그 자체의 특성(본질)이며, 이와 같이 통일된 것으로서의 표준을 가지고자 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다. 위의 국가표준의 정의에서는 표준의 목적을 엿볼 수 있다. “정확성, 합리성 및 국제성 제고”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산업표준화법의 목적조항(제1조)에 의하면 “산업경쟁력의 향상”이 산업표준화를 추진하는 목적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최근에 제정된 기상관측표준화법에 의하면, “기상관측의 정확성과 기상관측장비의 운용 및 기상관측자료 공동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기상관측표준화의 직접적인 목적이다(제1조).
(3) 이상을 종합하면, 표준은 기준이기는 하되, 통일성을 본질로 하며, 해당 분야 또는 해당 지역에서의 정확성, 합리성, 공동활용(상호관계), 효율성, 경쟁력강화 등을 직접 그 목적으로 한다고 하겠다.
(4) 이에 대하여 기준은 통일성을 본질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준은 단지 준거해야 할 일정한 준칙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기준은 복수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기준을 설정하는 목적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당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준이 현실적으로 하나만 존재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표준과 동일시되는 측면이 있게 된다. 그러나 통일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성질상 하나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우(표준)와 현실적으로 또는 기술적으로 하나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또는 하나만이 최선이기 때문에 하나만 있는 경우(기준)는 그 의미가 다르다. 만일 일정한 분야에 있어서 요구되는 기술기준이 정확성이나 합리성, 또는 공동활용이나 경쟁력제고 등의 이유에서 통일된 하나만이 요구된다고 한다면, 그 경우에는 기술기준이 아닌 기술표준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기술기준 가운데 기술개발에 중립적이어서 비교적 장기에 걸쳐 불변으로 존재하는 기술기준이 있다면, 그 경우에도 외형상 기술기준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기술)표준과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통일성은 복수의 것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하나로서 고착되는 것은 표준의 의미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5) 또한 왜 그러한 준칙에 준거해야 하느냐는 의미에서의 기준이 존재해야 하는 목적도 반드시 표준의 경우와 같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즉 기준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정확성이나 합리성, 경쟁력강화 등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예를 들어 이곳에서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각종 기술기준의 경우에는 특히 정확성이나 합리성을 도모하는 목적보다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사고발생의 방지)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표준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단지 정확성이나 합리성에 차질이 발생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지만, 기술기준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 신체에 대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는 중대성을 지닌다.
7)실정법에도 기술표준이라는 용어가 다수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산업자원부와그소속기관직제 제3장이 그러하다.
8) 예를 들어, 불판과 부탄캔 간의 거리를 띠우게 하는 기술기준이 잘못 되어 있으면 부탄캔의 폭발이 일어난다.
9) 물론 권한의 위임·위탁에 의하여 국가 이외의 자가 사실상으로 제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표준은 통일된 하나만이 존재하여야 하므로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통일성을 꾀할 수 있는 주체가 표준의 제정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표준의 경우에는 국가가 그 제정주체이어야 함에 반하여, 기술기준의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보호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이유에서 기술기준의 제정권한을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점에서도 결론에 있어서는 두 경우 모두 국가가 제정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국가표준의 경우에는 표준의 성질상 국가 아닌 자가 제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기술기준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개인의 안전은 기본적으로 각 개인의 책임(자기책임)이 원칙적인 모습이며 국가(공권력)는 개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 또는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할 때 보충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안전에 있어서 자기책임이 우선되어야 하며, 국가에 의한 안전확보는 2차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기준의 제정주체가, 또는 기술기준의 제정운용관리의 주체가 반드시 국가이어야 한다는 요청을 배척한다. 여기에 국가가 아닌 민간분야가 기술기준을 제정·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다.
10)여기서의 자기책임이란 자력구제 또는 자기방위의 의미와 다르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11) 이는 자기책임을 기대할 수 없을 때에는 국가에 의한 안전확보가 1차적이 됨을 의미한다.
12) 예를 들면 원자력법 제22조제2호 등 참조.
2. 기술기준과 허가기준의 구별
실정법에 의하면 기술기준 가운데 특히 시설에 관한 기술기준은 허가기준과의 구별이 간혹 혼동된다. 허가기준은 허가의 요건과 같다. 그리고 기술기준을 충족한 경우에만 허가가 행하여지는 체계를 법률이 채택하고 있는 경우에 기술기준은 허가요건의 일부를 형성하여 행정청의 허가결정을 좌우하게 되므로 기술기준 그 자체가 허가의 기준과 같이 생각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개개인의 안전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보충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달리 기술기준을 국가가 직접 제정 관리해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허가권자는 허가를 해주기 위한 기준을 정립해 두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법령에서 허가기준으로서의 기술기준을 규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허가기준이 되는 기술기준은 기술기준인 동시에 허가기준이 된다. 그러나 모든 기술기준이 다 허가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허가기준을 반드시 허가권자가 직접 그 내용에 대하여서까지 세세하게 규정해야 하는 요청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만일, 허가기준에 국제협약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입법자가 규정하였다고 한다면, 허가권자에게는 국제협약을 준수하였는지 여부의 판단권이 유보되어 있을 뿐, 국제협약 그 자체까지도 직접 허가권자가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술기준의 경우에도 어떠한 기술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허가기준이지만, 그 기술기준까지도 직접 허가권자가 제정·운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입법과정에서의 규제심사에 대하여 잠깐 언급한다면, 위의 예에서 국제협약의 준수의무를 허가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므로 규제에 해당하게 되고 그것이 규제의 신설이나 규제의 강화에 해당한다면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될 것인데(행정규제기본법 제7조) 이 경우에 규제개혁위원회가 국제협약의 내용에까지 그의 심사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고도의 전문 기술적이고 엄정한 절차를 거쳐 제정된 것이라면 그 내용에 대하여는 규제개혁위원회도 존중을 해야 하고 규제심사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규제심사는 현실적으로도 규제심사권의 능력 밖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면 그와 같은 허가기준에 대한 규제심사는 국제협약의 준수의무를 부과한 것이 과연 타당한가, 허가제도의 설치목적에 부합하는가 하는 데에 그치게 될 것이다. 엄정한 절차를 거쳐 제정된 전문 기술적 성격의 기술기준을 허가기준으로 부가한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13)다만, 허가기준으로서 기술기준을 규정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기준이 전문기술로서의 성격이 미약하고, 오히려 기술기준같이 보이지만 정책적인 이유에서의 요건이며 구체적·개별적으로 허가기준이 되고 있는 경우에는 규제심사를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Ⅲ. 기술기준규율에 대한 우리의 입법태도
1. 실정법상 기술기준에 관한 규율체계
가. 규율분야와 목적
현행법상 기술기준을 채택하고 있는 법률은 상당히 많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것이 추구하는 직접적인 목적이 안전의 확보 즉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의 예방 내지 사고의 예방에 두어져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아니한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상관측표준화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술기준은 기상관측자료의 품질관리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제10조). 또한 계량에관한법률은 한국계량측정협회에 계량기·측정기의 기술기준 개발·보급에 관한 사업을 부여하고 있는데(제24조제2항제4호), 계량기·측정기 그 자체는 생명·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기기가 아니므로, 이곳에서의 기술기준제도의 설치목적은 동법의 목적조항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공정한 상거래질서의 유지라고 하는 경제적 측면에 두어져 있다고 하겠다.
이에 반하여 송유관설치공사를 함에 있어서의 기술기준(송유관안전관리법 제3조제2항 및 제5조), 전기공사시에 준수해야 하는 기술기준(전기공사업법 제18조), 전기통신시설의 유지·보수·운영기준으로서의 기술기준(전기통신사업법 제16조 및 제25조), 집단에너지시설의 설치·운용에 관한 기술기준(집단에너지사업법 제21조), 항만시설의 설치·유지의 기준으로서의 기술기준(항만법 제26조), 소방용기계·기구의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소방시설설치및안전관리에관한법률 제36조제5항), 여객자동차터미널의 공사계획과 구조 및 설비에 관한 기술기준(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9조제2항, 여객자동차터미널구조및설비기준에관한규칙 제1조), 원자력법상의 각종 기술기준(원자력법 제22조·제44조·제58조·제62조·제64조·제66조 및 제71조 등), 원자로시설등의기술기준에관한규칙, 제조소등의 위치·구조 및 설비에 관한 기술기준(위험물안전관리법 제5조제4항) 등 현행법이 도입하고 있는 대개의 기술기준제도는 해당 분야에서의 안전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여 틀리지 않는다. 가장 많은 기술기준을 보유하고 있는 전기나 가스분야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나. 규율 메커니즘
현행법은 이러한 기술기준의 대부분을 원칙적으로 국가가 직접 규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 규율체계는 비교적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부령과 고시로 나누어 규정하고 그 준수를 강제한다. 기술기준의 준수를 직접 의무지우지 않고 기술기준에 기초한 인허가나 신고 없이는 해당 분야의 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기준에 미달하는 업자의 진입자체를 차단하거나, 기술기준을 준수한 제품만의 제조나 유통, 사용 또는 기술기준을 준수한 시설만의 시공 등을 허용하고 그 위반시에 벌칙을 마련함으로써 기술기준의 준수를 강제한다. 이 경우 기술기준은 앞서 본 인허가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또 벌칙의 부과요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적어도 벌칙의 부과요건이 되는 한에 있어서는 기술기준은 반드시 국가에 의하여 제정되지 않으면 아니되는 요청이 발생한다. 행정벌의 기준을 민간이 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14)예를 들면 국가에 의한 품질인증 등.
그러나 만일 (ⅰ) 기술기준의 준수를 강행규정으로 하지 아니하고, 그 준수시에 우대하는 조치를 마련하는 방법으로 준수를 권장하는 유인적 규율체계를 갖추고, 이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만 책임을 묻는 방식을 취한다면, 기술기준 그 자체를 국가가 직접 제정 운용해야한다는 요청은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ⅱ) 준수의무는 부과하되 위반시의 제재조치를 강구해 놓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기술기준은 벌칙기준으로 작용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국가가 제정해야 한다는 요청은 발생하지 않는다. 아니면 (ⅲ) 기술기준을 세분화하여 국가가 직접 규율하여야 할 기술기준과, 국가가 직접 규율하지 않아도 될 기술기준 또는 국가가 직접 규율함에 적합하지 아니한 기술기준을 분리하여 전자의 경우에만 그 준수를 강제하고 위반시의 벌칙을 마련하고, 후자에 대하여는 실제 이해관계자인 민간부문의 역량에 맡기는 방식이 고려될 수도 있다. 이것이 이른바 서두에서 언급한 일본의 성능규정화의 메커니즘이다. 국가가 반드시 직접 통제하여야 할 부분은 성능에 관한 기술기준이지 수치나 형상, 재료 등을 개별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상세한 기술기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동일한 성능을 달성할 수 있는 수치나 형상, 재료의 조합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간부문이 각기 창의력과 기술력을 발휘하여 제정 운용하는 기술기준이 국가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성능을 충족하는 기술기준이면 어느 것이든 법령에 합치하게 되며 법률위반으로 인한 벌칙 등을 받지 아니하게 된다.
이 경우 민간부문이 제정 운용하는 상세한 기술기준이 법령이 규정하는 성능기술기준에 합치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행정권이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도의 전문 기술적인 분야이므로 법원에 의한 판단에는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할 것이다.
2. 우리의 기술기준 규율체계의 문제점
가. 부령·고시형태에 의한 기술기준운용상의 문제점
이상의 검토에서 추론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기술기준 규율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기준의 규정형식이 부령과 고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기술기준 규율체계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러한 부령과 고시에 의한 규율체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부령과 고시에 의한 기술기준의 규율은 국가가 기술기준의 세부적인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직접 규정하고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에 대하여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매우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과 같은 부령·고시가 현실적으로 그 제·개정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여 상황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본래 행정입법은 행정활동이 대규모화되고 복잡 다양화됨에 따라 국회가 장래의 모든 행정활동의 변화를 예상하여 법률로 상세히 규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한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법률보다는 명령(시행령·시행규칙)이, 또 명령보다는 행정규칙(고시·훈령 등)이 보다 규율환경의 변화에 따른 신축적인 대응이 기대되는 입법형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러하지 못하다.
행정규칙(고시)이라도 국민의 권리·의무나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행정상 입법예고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행정절차법 제41조제1항), 법제처와의 관계에서는 사후적법성 심사(법제업무운영규정 제25조)만을 받지만, 특히 기술기준고시는 법령등의 위임에 의한 고시이므로 규제심사를 받지 않으면 아니된다(행정규제기본법 제2조제1항제1호·제2호). 그 외에도 관행상으로 부령의 제정절차에 준하여 이해관계인의 의견수렴이나 관계행정기관의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고시의 제·개정이 결코 신속하게 진행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이론과 실제를 구별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규제의 신·증설을 가급적 꺼리는 풍토하에서 담당 행정기관이 규제의 신·증설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현 상태의 변화에 소극적이 되는 점, 다시 말하면, 현 상태로 크게 문제가 없으면 기술기준의 제·개정을 지연시키거나 기피하게 된다는 점, 나아가 담당 행정기관이 기술기준의 제·개정을 결단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정식의 규제심사에 회부하기에 앞서 자체 규제심사를 거치고 또한 규제개혁위원회와 사전에 협의를 거치는 것이 보통인데, 전문기술적인 기술기준고시의 내용을 비전문가인 규제심사 담당자에게 설명하고 그 이해를 구하는 것이 또한 난관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해를 구하기까지에는 섣부른 규제심사회부 자체를 자제하게 되므로 이상의 복합적인 행정실무상의 풍토나 관행에 의하여 관련 규정의 제·개정은 현실적으로 매우 지체되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시행규칙 형태의 기술기준인 경우에는 규제심사 외에 법제처의 법제심사도 사전에 받지 않으면 아니 되므로(법제업무운영규정 제21조제1항), 기술기준의 제·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 내용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역시 법제전문가일 뿐인 법제처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아니 되므로 이 점도 어려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의 경우에 문제의 대상이 국민의 안위에 관한 중대한 사항이며,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장기간의 심사가 요구된다고 하여도, 또한 관계 행정기관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를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기술기준은 사실로서의 기술기준일 뿐이며, 규제도 법률행위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실행위이
자 가치중립적인 기술(기준)에 대한 규제심사나 법제심사가 과연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경우에는 그러한 순수한 기술기준에 대하여 법제심사나 규제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규제완화의 대상이 되어야 할 새로운 규제로 평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현실에 있어서의 기술기준 제·개정의 어려움은 기술기준의 적시적인 제·개정을 지연시키는 결과 많은 손실을 파생시키게 된다. 우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거나 도입되더라도 이를 기술기준에 반영하기까지 많은 시일이 소요되게 된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기술의 신속한 반영이 늦추어져 국제통상에 있어서 마찰이 초래되거나, 국내제품의 기술기준이 국제적인 기준과 부합하지 않아 국내제품의 국제경쟁력이 하락될 우려도 존재한다. 나아가 관련기업들이 적극적인 기술투자를 하여 신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기술기준에 반영하기가 어려우므로 굳이 신기술 개발 등의 투자를 의욕하지 않게 된다. 이는 국내기술의 정체를 초래하고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뿐이다. 심지어 기술기준의 신속한 제·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제·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동안에도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방관만 해야 하는 형국도 초래된다.
15)예를 들어 가스안전공사의 자료에 의하면,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불판과 부탄캔 간의 거리를 띠우게 하는 기술기준안을 작성하였으나 이를 법령을 반영하는데 1년6개월이 소요되어 그 동안에 같은 유형의 사고가 6건이나 더 발생하였다고 한다.
나. 국가주도적 내지 국가독점적 기술기준운용상의 문제점
반복되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기술기준을 빠짐없이 부령과 고시의 형태로 제정하고, 이를 국가가 직접 운영·관리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확보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굳이 명칭을 붙인다면 이른바 기술기준의 국가독점 또는 국가주도적인 기술기준운용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국민의 안위에 대하여 국가가 아주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안전의 문제라고 하여 국가가 그 모든 것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주도적인 안전관리는 국가가 직접 기준을 세우고, 그 준수를 강제하는 규제를 통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규제에 익숙하게 되면 자율을 통하여 더 나은 안전을 달성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규제에 안주하는 폐해가 예상된다(국가의존). 일본에서 가스분야 기술기준의 성능규정화를 추진한 데에는 가스사고발생률이 일정한 시점 이후로 더 이상 감소하지 않는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규제를 통한 가스사고예방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 한계점을 넘어 사고발생률을 더욱 줄일 수 있는 것은 자율적인 안전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독점주의’나 ‘규제’는 ‘자기책임원칙’이나 ‘자율’에 반비례한다.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사고율의 추가감소는 후자의 이념하에 보다 달성될 수 있다. 이는 국가주도적인 안전관리나 강력한 규제가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안전의식이 희박하고 기술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독점주의나 강력한 규제가 보다 실효적인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규제만을 통한 성과에는 한계가 있다.
Ⅳ. 주요외국의 가스안전기술기준 운용체계
이하에서는 여러 기술기준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스분야의 기술기준운용체계를 중심으로 주요 국가의 실상을 살펴본다.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가 없는 오늘날 각국마다 그 운용체계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비교검토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16)가스안전 기술기준운용의 적정성 및 기준체계에 관한 연구, 한국법제연구원 용역보고서, 2005.4.29, 71-198쪽 참조. 김치환, 가스안전기술기준 코드화의 국제동향과 우리의 과제, 가스안전, 2005.7.
1. 독일에 있어서의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운용체계
독일은 자율적인 가스안전관리가 가장 잘 구현되고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 있어서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제·개정의 중심에는 DVGW(독일가스수도협회)라고 하는 민간기관이 있다. DVGW는 1859년에 28명의 가스업계 대표들이 모여 결성한 “독일 가스전문가·업계 대표자 연합”에서 비롯한다. 당초에는 가스분야의 전문가들로만 출발하였다가 1870년에 수도부문이 가세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DVGW는 가스수도분야에 있어서 실무적이고 학문적인 기술연구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기술기준집(DVGW-Regelwerk)의 작성과 발간을 핵심적인 업무로 한다. 국가는 DVGW가 행하는 기술기준의 제·개정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그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예산지원도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다. 독일에 있어서 국가가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제·개정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행정과정에 의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이 개발되는 기술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한데 기인한다.
그러면 국가는 가스안전에 대하여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에너지경제법 제16조제1항은 가스설비 등의 설치와 운영에 있어서 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시설은 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되도록 설치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이 때 통상의 법률규정에 근거하여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규정이 준수되어야 한다.”
그런데 DVGW가 제정·운용하는 기술규정을 준수하는 경우에는 위의 제16조제1항에서 말하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규정”을 준수한 것으로 추정된다(동조제2항). 따라서 일반 가스관련 사업자들은 DVGW의 기술기준을 따름으로써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추정 받으며 이를 통하여 가스안전을 확보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는다.
이 경우에 일반 사업자들이 DVGW의 기술기준을 준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즉, DVGW의 기술기준을 준수할 것이 법에 의하여 강제되고 있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에너지경제법은 단지 DVGW의 기술기준을 준수하면 가스안전이 담보되고 있다는 추정력만을 부여할 뿐이지 DVGW의 기술기준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있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모든 관련사업자들은 DVGW의 기술기준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DVGW의 기술기준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점과 관련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기술기준을 개발하는 경우보다도 DVGW가 운용하는 기술기준을 준수하는 편이 보다 비용절감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독일에 있어서는 국가가 아닌 민간기관으로서의 DVGW가 기술기준을 제정·운용하고, 모든 가스관련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DVGW가 운용하는 기술기준을 따름으로써 높은 수준의 가스안전을 실현하고 있다. 기술기준의 제·개정의 과정도 전적으로 국가가 아닌 민간기관의 자율에 맡겨져 있고, 그러한 민간기관이 제정·운용하는 기술기준의 준수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기술기준의 제·개정과 준수과정 모두에 있어서 법적 구속력이 없이 자율성이 관철되고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미국에 있어서의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운용체계
미국은 연방국가라는 특성에서 연방과 주가 각각의 관할대상에 대하여 기술표준을 정하고 있다. 근로자의 작업환경의 안전에 관한 사항과 같이 국가 전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원칙하에 규율되어야 할 사항이라든지 파이프라인을 통한 주와 주사이의 가스수송의 문제와 같은 연방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사항에 관해서는 관련연방법이 적용된다. 이에 대하여 주 안에서의 가스저장이나 수송과 같은 주차원의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주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주에 있어서의 가스안전에 관한 규율이 상당부분 연방기준(established federal standard)이나 국가적 합의기준(national consensus standard)에 해당하는 민간기준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주들 간에 있어서 가스안전규율에 큰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에는 반드시 가스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나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간의 전문 표준기구들이 활동해 왔다. 익히 알려져 있는 미국표준협회(ANSI), 미국기계공학회(ASME), 미국방재협회(NEFA) 등을 비롯해서 미국석유협회(API), 미국가스협회(AGA), 미국압축가스협회(CGA) 등이 그러하다. 이는 앞서 본 독일의 경우 가스분야와 관련하여 DVGW라고 하는 단일 기구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온 것과 대조된다. 이들 민간기관들은 저마다의 기술기준을 제정하여 운용한다. 여기서 국가는 굳이 스스로가 직접 기술기준을 제정·운용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확립되고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민간부문의 기술기준을 법령에 개별적으로 인용하는 것으로서 충분히 가스안전의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로서는 꼭 필요한 사항에 관해서만 그의 법령에 직접 규정하는 것으로써 충분하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우 연방규칙(CFR)에서는 골격이 되는 주요한 내용이나 기술적 사항이라고 해도 가변적이지 않은 것만을 규정하고 기술표준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은 미국표준협회(ANSI), 미국기계공학회(ASME) 등을 비롯한 위에서 소개한 여러 민간기구들의 기술기준이 적용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민간기관들이 제정·운용하는 기술기준은 연방이나 주의 법령에 인용되기 전까지는 그 준수가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으나 인용된 후에는 법적 구속력이 발생한다.
이상과 같은 미국의 기술기준의 운용체계도 기술기준의 내용 그 자체는 민간기관에 의하여 자주적이고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므로 기술기준의 제·개정의 수요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즉시적으로 파악하는 해당 민간기관에 의하여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에 있어서의 민간기관의 기술기준은 변화하는 기술의 수용에 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법령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해당 분야에 대하여 기술적인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행정관료의 손에 의하여 법령의 제·개정절차를 일일이 다 거쳐야 하는 절차의 지연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
다만, 민간의 기술기준제정기관이 기술기준의 제·개정수요에 신속히 대응한다고 하여 전혀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안이하게 기술기준을 제·개정한다고 이해되어서는 아니된다. 민간기관들은 저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여 미리 정해놓은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기술기준의 제·개정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일본에 있어서의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운용체계
일본에 있어서 가스안전기술기준 운용체계의 개편은 이른바 성능규정화라는 표현으로 대변된다. 이미 모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성능규정화란 사양규정을 성능규정으로 바꾼다는 의미이다. 사양규정이란 법령에서 가스관련 제품이나 시설 등이 갖추어야 할 구조나 충족해야 할 기준 등을 수치 등을 포함하여 매우 상세한 형태로 규정하고 그 준수를 강제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하여 성능규정이란 가스관련 제품이나 시설 등이 갖추어야 할 대강적인 성능만을 법령에서 규정하고 그 외의 상세한 기준 등은 가급적 법령에서 규율하지 않는다고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성능 이외의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술기준을 법령에서 규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스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기술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능규정화의 의의는 성능 외의 상세한 기준을 더 이상 법령에서 직접 규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그 결과 성능 이외의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술기준은 민간부문에서 자율적으로 제정하여 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법은 단지 이와 같이 민간부문에서 제정·운용하는 기술기준이 법령에서 규정하는 성능에 반하지 않을 것만을 요구한다. 따라서 종래 국가가 기술기준의 제·개정을 전담하고 민간부문에서는 그것에 무조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체계에서 이제는 민간부문도 얼마든지 상세한 기술기준을 제정·운용할 수 있으며 단지 그러한 상세기준이 성능규정에 반하지만 않으면 족하다고 하는 체계로 변화되었다.
일본의 성능규정화라고 하면 그에 반드시 수반되는 개념에 예시기준이 있다. 예시기준이란 성능규정을 충족하는 상세기준의 예로서 국가가 제시한 것을 말한다. 국가가 가스안전에 관한 그의 규율을 성능에 한정하고 상세한 기술기준에 대하여 민간이 자율적으로 제정·운용할 수 있는 체계로 변경하였다고는 하나 종래 국가주도적인 규제에 의지하여 가스안전을 유지해 오던 수많은 가스관련 사업자들에게 있어서는 자체적으로 상세한 기술기준을 마련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여러 가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편의상 국가가 예시기준의 형태로 성능규정을 충족하는 기술기준의 예를 제시한다고 하는 논리이다. 이 때 국가가 제시하는 예시기준을 준수하는 경우에는 성능규정을 충족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예시기준은 통달의 형식으로 제시되는데 통달은 법령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일본의 성능규정화의 배경에는 당시의 행정개혁과 규제완화라고 하는 큰 흐름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에 있어서 기술기준의 성능규정화는 비단 가스분야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기와 건축 등의 분야에 있어서도 성능규정의 관념이 도입되고 있다.
일본은 가스안전기술기준의 성능규정화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였다. 첫째로, 기술혁신에의 신속한 대응이다. 기술기준을 성능규정화하게 되면, 상세한 기술기준은 법령의 형식을 취하지 않으므로 법령의 제·개정에 따른 절차의 지연 등의 비효율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성능규정을 충족하기만 하면 원칙적으로 어떠한 기술이라도 허용되므로 새로운 기술의 채용이 매우 용이해진다. 둘째로, 국제기준 등과의 정합성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술기준에 대하여도 이를 일률적으로 배척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성능규정을 충족하면 그 도입이 허용된다. 이는 국내기준과 국제기준과의 괴리를 해소하여 기술경쟁력의 향상이나 경제적 교역의 활성화에 유익하다. 셋째로, 자주적인 안전관리를 촉진하게 되는 점이다. 종래의 국가주도적인 규제에 안주하여 가스안전을 유지해오던 민간부문이 이제는 스스로 가스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기준의 정립과 개발을 위하여 궁리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준수해야 할 대강적인 성능만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일본에 있어서의 가스안전 기술기준의 성능규정화는 일거에 추진되지 아니하고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즉, 1998년3월에 용기보안규칙을 성능규정화한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2000년3월에 특정설비검사규칙, 2001년3월에 일반고압가스보안규칙, 액화석유가스보안규칙, 콤비나트등보안규칙, 냉동보안규칙이 각기 성능규정화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서의 성능규정화는 완성된 것이 아니며 현재에도 기존 법령에 대하여 성능규정화를 위한 정비노력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Ⅴ. 우리 법제의 개선방향
이상에서 검토한 독일이나 미국의 예를 참조하면, 기술기준을 꼭 국가가 독점하여 그 세세한 부분까지 작성하지 않으면 안전은 달성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전담하여야만 안전이 확보되고, 국가 아닌 자가 담당하여서는 안전에 위험이 초래된다는 필연성은 없다. 오히려 현실은 앞서 보았듯이 국가가 담당하고 있어 기술개발을 저해하고, 제·개정의 주저 또는 기피·지연으로 인하여 안전이 위협되거나 보다 나은 안전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의 기술기준운용체계로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상황에 다다랐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하면, 앞서 지적한 현행 기술기준 운용체계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기술기준을 부령과 고시의 형식에 의하여 제정·운용하는 문제점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점은 기술기준의 제·개정절차의 불필요한 지연이 요인인 것이므로, 이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안은 두 가지가 제시될 수 있다. (ⅰ) 하나는 불필요한 절차를 제거하고 기술기준 제·개정절차를 신속화 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들이 신속히 반영되고 국제적인 기술변화의 흐름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ⅱ) 다른 하나는, 기술기준의 존재형식을 근원적으로 탈피하는 방안이다. 즉 기술기준을 국가가 직접 제정·운용하는 법령이나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에서 작성하고 관리하는 민간기준의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행정입법의 제·개정 절차에 의하지 않게 되므로 위에서 지적한 행정입법 제·개정 절차상의 불필요한 지연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동시에 국가주도 내지 국가독점적 기술기준운용상의 문제점 해소에도 기여한다.
그런데 (ⅰ)의 방안은 행정내부에 스며있는 입법관행이나 풍토로 인하여 그 실현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면 (ⅱ)의 방안이 보다 명쾌한 대안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종래 행정이 장악하고 있던 것이 일거에 민간부문으로 넘어가는 양상을 띠므로 여러 가지 혼란이 우려될 수 있다.
우선 현실적인 문제로서는 민간기준에 의하여 운용하는 방식으로 과연 안전이 달성될 수 있는가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가스분야의 경우 기술기준의 제·개정을 함에 있어서 종래 소관청은 현실적으로 민간부문의 가스관련 전문기술자집단의 조력하에서만 그의 사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만큼 기술기준의 재·개정에 대한 중심적인 역할은 종래부터 가스관련 전문기술자집단이 수행해온 것과 다름이 없다. 기술에 관한 문제는 행정가가 아닌 전문기술자의 판단에 보다 적합하다. 또한 앞서 본 독일의 경우에는 기술기준의 제·개정에 국가가 기본적으로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가스안전을 실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법리적으로 기술기준이 부령이나 고시 이외의 형식으로 제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앞에서도 일부 지적한 바 있으나, 이 문제에 관하여는 좀 논의가 필요하다. 기술기준을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면 이는 법규사항이므로 민간부문이 법규사항을 제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민간부문의 기술기준을 준수하면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추정하는 효력을 부여하는 한 해당 기술기준이 직접 국민의 권리의무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법규라 할 수 없고, 그 형식이 법규명령의 형식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독일에서는 민간기준의 준수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뿐, 민간기준의 법적 강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부여하는 추정력을 손쉽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민간기준을 준수하면 되는 것이고, 그 민간기준과 다른 기준을 채택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채택한 기준이 법이 요구하고 있는 일반적인 기술기준을 충족하고 있음을 사업자가 입증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 입증이 어려운 작업이므로 사업자로서는 전문기술자 집단이 제정한 민간기준을 성실히 준수하여 법이 부여하는 추정력을 인정받는 것이 편리하다. 민간기준의 준수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기준의 준수의무와 민간기준(DVWG기준)의 추정력을 부여하는 것만으로 민간기준의 사실상의 구속력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기술기준에 어떠한 효력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법규명령의 지위를 가질 수도 있고, 법규명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기술기준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기술기준은 과학이나 공학의 연구성과, 실험 등에 의하여 얻어진 가치중립적인 사실의 문제라고 보는 한, 이는 법규명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도 기술기준을 부령이나 고시의 형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여 법리적인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종래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것을 송두리째 민간부문으로 넘기는데 따른 안전에 대한 우려, 권한의 상실감, 국가의 안전에 대한 책임, 혼란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한다면, 무언가 완충장치나 중간단계가 마련되어 있을 필요도 고려될 수 있다. 그러한 대안으로서 일본의 성능규정화 논의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종래의 기술기준을 분석하여 이를 성능과 상세로 구분한다. 그리고 성능만은 국가가 여전히 관장함으로써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를 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독일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기준’의 준수의무만을 일반적으로 요구하고 있음에 반하여, 일본은 그 일반적으로 승인된 기술기준을 좀 더 세분하여 ‘성능’이라는 이름으로 개개의 경우마다 국가가 제시해 주자고 하는 것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일본의 예를 참고할 수도 있으며, 이를 다소 변형하여, 민간부문이 주도적으로 기술기준을 제정·운용하되, 그 제·개정되는 기술기준에 대하여 소관청의 승인을 얻도록 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에 대한 감독권한을 남기는 방안이 고려될 수도 있다. 이에 의하여, 국가와 민간부문간의 이해관계 내지 요청을 어느 정도 조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안에 의하든, 기술기준이 반드시 국가에 의하여 독점적으로 제·개정 운용되어야 하는 논리적인 필연성은 없다. 누구에게 기술기준의 제·개정 운용권한을 부여하며, 그 형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기술기준에 어떠한 효력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는 모두 논리의 문제가 아닌, 현실인식의 문제이고, 정책결정의 문제에 불과하다. 오히려 순수한 기술기준은 앞서 누차 지적하는 바와 같이 법규가 아닌 가치중립적인 사실문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