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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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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대 김형연 법제처장] 이임사
  • 등록일 2020-08-18
  • 조회수1,334
  • 담당부서 처장실
  • 연락처 044-200-6503
  • 담당자 황현숙

친애하는 법제처 가족 여러분

 

생애 처음으로 세종이란 곳에 와서 낯선 여러분을 마주한 지 엊그제 같은데,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회자정리의 사자성어가 어느덧 눈앞에 와 있습니다.

 

어느 소설가는, 여행이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길을 떠났다가 이런저런 시련을 겪으며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나름 자신의 여행관을 피력하였습니다.

 

인생살이 자체가 여행이라 할 수 있고, 12개월 보름 남짓의 법제처장 재임 기간이 앞선 소설가의 여행관과 비슷하기에 그간의 일을 여행에 비유하겠습니다.

 

저는 법관과 법무비서관 재직 시의 경험을 토대로, 헌법과 국민의 권익이 앞서는 법제처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함께, 필요한데도 공백 상태에 있던 정부 내 자문 기능을 법제처에서 구현하리라 다짐하며 법제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제가 설정한 목표의 실현 여부는 오로지 저의 의지와 능력에만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개개의 판사들에 의한 판결로 사건이 매듭 되는 법원과는 달리 조직적 협업에 의하여 움직이는 행정기관의 운영 모습을 보면서, 혼자 치고 나가 달리는 단거리 경기가 아니라 함께 격려하며 달리는 장거리 경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때부터 여행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제처 여행을 내내 홀로 하였다면 제가 설정한 목표에 관한 한 외형상으로는 빠른 진척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하지 않은 그 여행은 제가 빠지는 순간 추억으로도 남지 않을 공허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 여행의 동반자로서 여러분들은, 어떤 때는 제 짐을 덜어주거나 마실 물을 갖다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좀 더 경치 좋은 곳으로 안내하기도 하면서 제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고 힘들 때 함께 하여주었습니다.

 

여러분과의 동행이 있었기에, 갖은 고난을 떨쳐내고 수십 년 숙원의 행정기본법 제정안을 마련하고 여러 기본법의 핵심 조항을 입안심사기준에 반영함으로써 행정법제 혁신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고, 의원입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 의견을 취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그 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비공개 행정규칙에 대한 관리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법령정보의 정확성과 철저한 공개를 담보할 수 있는 법령정보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속하고 집중력 있는 입안지원으로 코로나19 대응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고, 국민 중심의 해석과 법제로 적극행정을 행정부 전체로 전파할 수 있었으며, 불합리한 법령과 어려운 법령용어를 줄기차게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제가 여행 시작 전에는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동반자인 여러분들의 문제 인식과 해결에 대한 능력 및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처음에 구상했던 정부 내 자문업무도 여러분들의 신바람 나는 달리기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국정 전반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법제처 여행은, 홀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좋은 동반자를 만나 뜻하지 않은 성과를 거둔 훌륭한 여행이었습니다. 저의 여행에 함께 해주신 법제처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친애하는 법제처 가족 여러분

법제처는 법을 다루는 곳인 만큼 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떠나면서 두 가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취임사에서도 강조하였듯이 법제업무든 법령해석이나 자문업무든 항상 최고 규범인 헌법을 염두에 두고 업무를 처리해 달라는 것입니다. 헌법이 현실을 호도하는 장식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되지 않게 하려면 헌법은 그 실행기관인 공무원의 일상생활 속에서 작동되어야 할 것입니다. 헌법은 공무원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내적 존재가 되어야지, 공무원의 입에서만 가볍게 흩어지는 외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는, 법규범을 대할 때에 절대주의적 사고가 아닌 상대주의적 사고를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자연법칙인 중력법칙에 의하더라도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상호간에 작용한다는 것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모든 운동은 관측자와 관측 대상 사이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듯이 상호작용은 물체보다 사람 사이에서 더 활발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주의적 사유에 의한 인식론은 사람 사이를 규율하는 규범의 세계에서 더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 홀로 존재하는 규범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천체물리학의 걸작인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책머리에서 아내 앤 드루안에게 바친 감사의 말로 제 법제처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자 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공간과 긴 시간 속에서 지구라는 작은 행성과 찰나의 순간을 그대와 함께 보낼 수 있었음은 나에겐 큰 기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