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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김외숙 법제처장] 국제신문 기고문-학교규칙 만들기, 공동체 규범을 배운다.
  • 등록일 2018-06-21
  • 조회수2,341
  • 담당부서 처장실
  • 연락처 044-200-6503
  • 담당자 권정아

학교규칙 만들기, 공동체 규범을 배운다.

 

지난 223일 법제처는 지방자치단체와는 최초로 부산시교육청과 청소년법제관 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청소년 법제관 사업은 2012년 법제처에서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어보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입법 체험 프로그램이다. 법제처는 매년 정부에서 제안하는 2000여 건의 법령안을 기초·심사하고, 500여 건의 법령을 해석하며, 300여 건의 법령의 정비를 추진하고, 전 지자체의 조례 등 자치법규의 입안을 지원하는 법제 전문 부처다. 청소년 법제관 사업은 이러한 법제처의 전문적인 업무를 청소년 버전으로 바꾸어 학교 규칙을 만들어 보는 체험활동이다. 청소년 법제관 사업에 선정된 학교는 청소년 법제관을 선발하고, 선발된 청소년 법제관은 전체 학생의 의견을 모아 학교 규칙의 내용을 법률과 비슷한 형태로 조문화하는 일에 참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청소년 법제관은 직접 만든 학교 규칙이 잘 지켜지도록 스스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법제 분야의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법제처장이 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법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규제를 혁신하면서 보면 사업가는 모든 규제를 사후규제로 할 것을 요구하고, 소비자는 반대로 안전문제를 고려하여 규제도 강화하고 손해배상 책임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요청한다. 이러한 다양한 요구가 토론과 합의를 거쳐 법으로 만들어진다.

청소년 시절에는 자기만의 마음 속 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릴 적 조용한 다락방에서 자기만의 성()을 만들고 영주가 되어 즐거운 상상에 젖어든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으리라.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생활한다면 자기만의 마음의 법이 하자는 대로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공동체에 속하고,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 배운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마음속의 나만의 법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법을 마음에 새기는 과정이 아닐까. 학교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 공동체에서 청소년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친구를 만나고, 모르는 것을 배우며, 앞으로 살아갈 더 큰 공동체인 국가와 지구촌에서 지켜야 하는 규율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힌다.

토론과 합의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법과 규칙은 지켜지기 어렵. 법령을 만들 때 입법예고, 공청회, 국회 의결과 같이 사회 구성원들이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절차를 두면 규범력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동안 두발 자유화가 학교에서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같은 두발 규칙이라도 학생의 자율적 참여가 이루어진 가운데 만들어졌다면 두발 자유화가 반항하는 청소년의 상징처럼 되진 않았으리라. 학교 규칙도 이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제정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토론과 합의를 통해 규칙을 직접 만든다면, 자발적으로 규칙을 지키며 서로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 법제관에 참여했던 한 중학교에서는 귀걸이와 같은 장신구를 착용한 학생에게 무조건 벌점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던 학교 규칙을 종교적 장신구에 한해 허용하도록 개정했다. 또 다른 학교의 경우, 징계를 받은 학생은 학생회 간부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되어 있던 규칙을 과도한 제한으로 판단해 담임교사의 추천이 있다면 입후보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청소년 법제관 사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먼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학교규칙을 정리해 보길 권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이런 규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규칙 하나 쯤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토론과정을 거쳐 자기가 제안한 규칙이 어떻게 학교 규칙으로 반영되는가를 지켜보자. 다른 사람이 제안하는 내용에도 귀 기울여 보자. 좋은 규칙에는 박수를 보내고 내가 제안한 규칙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자. 마지막으로 공정한 표결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비록 결정된 학교 규칙에 나의 제안이 반영되지 않았더라도 기꺼이 지키겠다는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 공동체의 규범을 만드는 일은 공동체의 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다. 부산 청소년 법제관 사업이 토론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공동체 규범의 소중함을 깨닫고 민주적 소양을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는데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