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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대 이석연 법제처장] 뮌헨대학교 특강_헌법정신과 한국의 법치주의
  • 등록일 2009-06-01
  • 조회수7,319
  • 담당부서 처장실

뮌헨대학교

(2009. 5. 26. 18:00 ∼ 19:00)





 

 

헌법정신과 한국의 법치주의


 








2009. 5. 26










법제처장 이 석 연

 

 

1. 한국 헌법의 기본이념과 통일, 개혁정책의 방향


  (1) 대한민국 헌법(이하 ‘헌법’이라고만 함)은 정치사회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질서의 두 축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법치주의 내지 적법절차를 그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헌법이 이러한 이념과 수단에 의해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질서는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구현 및 행복추구권의 보장이다. 헌법이 기본으로 하고 있는 이들 제도는 지금까지 인류가 모색해 온 정치, 경제, 사회체제에 관한 최선의 제도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 헌법에서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체제의 지향점이자 헌법개정의 한계이다. 이 점은 헌법이 국가 목표로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질서에 입각한 것이어야 함을 천명(헌법 제4조)하고 있는 데에도 나타나고 있다.


  (2) 이처럼 통일 후의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는 법치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되어야 함이 헌법의 정신이라는 점에서 이에 반하는 통일정책이나 주장은 그 자체가 위헌적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거스르는 시대역행적인 것이라 하겠다. 통일이 자유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자유민주주의가 통일의 희생물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확고한 의지이다.


  (3) 앞서 본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국가의 경제·사회정책의 방향은 어느 정권을 불문하고 국민의 구체적 삶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실용주의적 개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은 이념과잉이나 거시담론의 장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본적 가치(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폭넓은 참여(참여의 기회균등)와 사회적 연대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 이명박 정부의 개혁정책 역시 이와 같은 헌법적 기조 하에 운영되고 있다.


또한, 헌법은 정권(권력)이 특정집단이나 특정정파에 의하여 독점 행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참여의 기회균등에 바탕을 둔 국민적 합의만이 헌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민주개혁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시민들이 그 이념과 가치관을 떠나서 합의할 수 있는 기본텍스트는 헌법이다.  따라서 헌법은 국민통합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2. 헌법합치적 경제·사회정책의 방향


  (1) 시장경제적 법치주의의 중요성


  ① 시장경제는 신뢰와 예측가능성 없이 성공할 수 없고 그 밑받침이 되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질서라는 헌법의 기본원리의 준수이다.

헌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담은 일반적 행동자유권, 직업의 자유 등 경제적 영역의 기본권의 보장을 전제로 하여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대한민국 경제질서 내지 경제정책의 기본이념 내지 방향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헌법은 국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하거나 경영을 통제하려면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하여 반드시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여(헌법 제126조) 시장경제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시장경제적 법치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② 다만,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정의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는 수정자본주의 내지 사회적 시장경제원리를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119조 제2항).  다만,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근거한 경제에 관한 국가의 각종 제도와 정책은 사유재산권 보장, 기업활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 등 자유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치국가적 원리에 따른 최소한에 그쳐야 함은 헌법의 체계구조상 명백하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이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일관하여 판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제하에 ‘독과점방지’와 ‘중소기업 보호’라는 공익적 목적의 달성도 궁극적으로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확립을 통하여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 헌법합치적 사회·복지정책의 방향


  ①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근로의 권리와 최저임금제의 보장, 근로자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노동3권, 여자와 연소자의 근로보호 등의 사회적 기본권 내지 생존권적 기본권 보장을 통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국가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국가 원리는 국민 스스로의 자율적인 생활설계에 의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이 실현가능하도록 사회구조의 골격적인 테두리를 형성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헌법이 상정하는 사회복지국가의 이념은 생활관계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여 국민생활의 상향적 조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은 절대적, 산술적 의미의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이다. 즉 "같은 것은 같게 취급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함으로써 달성되는 배분적 정의에 입각하고 있다.


평등은 언제나 자유를 전제로 할 때에만 그 의미가 있다. 즉 ‘자유 속의 평등’이어야지 ‘자유 대신에 평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헌법은 ‘자유 대신에 평등’이 아닌 ‘자유 속의 평등’을 추구한다.


  ② 경제적 영역에서 평등주의를 강요하게 되면 시장경제는 성장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절대평등을 추구하지만 차별성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민주화대상이 아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기회의 균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지만 결과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경쟁의 결과 뒤쳐진 계층을 끌어 올려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따라서 정부의 평등 내지 분배정책의 기본은 큰 나무를 쳐서 작은 나무의 키에 맞추는 하향 평준화식 되어서는 아니 된다.  작은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상향조정식 이어야 한다. 잘나가는 사람이나 중산층을 깎아내려 다수 국민의 배아픔을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접근은 경제를 망치고 결국 사회의 희망을 잃게 한다.


  ③ 경제성장에 의해 생산된 것만이 분배될 수 있다. ‘성장’은 다른 것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여러 목표 중의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달성되어야 하는 필수목표이다. 이처럼 ‘성장’과 ‘분배’는 선택개념이 아니라 선후(先後) 개념이다.


성장과 분배가 선후관계냐, 선택관계냐에 대한 헌법에 명문의 근거는 물론 없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헌법의 기본원리이고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은 예외적인 보충원리라는 점, 헌법상 사회국가원리가 국민 스스로의 자율적인 생활설계에 의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이 실현가능하도록 사회구조의 골격적인 테두리를 형성해 주는데 있다는 점,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관한 헌법의 태도, 특히 평등에 관한 상대적 평등설의 입장 등을 고려할 때 헌법은 성장과 분배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선후개념에 입각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개념을 도외시하거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한 여건 보장을 소홀히 한 채 복지와 분배위주의 사회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헌법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서 자칫 무책임한 인기영합정책 내지 정치적 구호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경계하고자 한다.


  ④ 결론적으로, 국민 개개인과 기업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합리적인 경제정책이야 말로 최선의 사회복지 정책임과 동시에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헌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다.


3. 헌법재판을 통해서 본 한국 법치주의 현황


  (1) 한국법치주의의 현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법치주의의 실현수단으로 인식되는 헌법재판의 활성화이다.


1987년 헌법개정으로 헌법재판소가 설립되고 그 관장사항으로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헌법소원심판의 5개 유형의 헌법재판이 도입되었다.  이후 20여년간 17,000여건(2009년 3월말 현재)의 헌법재판사건이 청구되고 이중 800여건이 위헌결정(헌법불합치 및 한정위헌, 한정합헌 등의 변형결정 포함) 및 인용결정 됨으로써 국민의 의식 속에 헌법재판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면서 ‘헌법에의 의지’(Wille Zur Verfassung)을 심어주고 있다.  특히 현행 헌법에 처음 도입된 헌법소원심판은 전체 헌법재판사건의 95% 가량을 점하면서 헌법규범의 생활화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헌법재판은 그 헌법적 기능(헌법보호기능, 헌법의 유권적 해석기능, 기능적 권력통제기능, 기본권 보호기능, 사회 안정 및 정치적 평화보장기능)을 다하면서 헌법의 적(敵)으로부터 헌법의 규범적 효력을 지켜 헌법이 수렴한 공감적 가치에 입각한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헌법재판을 빼고 한국의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헌법재판의 위상이 확고해졌다고 하겠다.


  (2) 나는 헌법재판소 출범 직후인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였으며, 이후 1994년부터 작년(2008. 3.) 법제처장 취임 전까지 14년 동안 변호사로서 헌법소송을 전담하면서 위헌적인 법령과 제도의 개선에 주력해 왔다.  때로는 내 자신이 직접 청구인이 되거나 아니면 위헌법령의 개폐를 목적으로 한 기획소송을 청구하는 등으로 헌법재판(주로 헌법소원)을 제기(약 200여건)하여 그 중 상당수(약 30여건) 위헌결정을 받아냄으로써 공익소송으로서의 헌법재판을 활성화하고자 노력하였다.


내가 공익소송의 일환으로 헌법재판을 청구하여 위헌결정을 받았거나 또는 헌법소원 등이 제기됨으로써 해당 법령과 제도의 개폐가 이루어진 중요한 실례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①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심화되도록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한 법률(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결정(1996년)


  ② 부모 사망시 자식 등이 모르는 빚을 갚도록 강제하고 있는 민법 상속법 규정에 대한 위헌결정(1998년)


  ③ 결혼식장 등에서 축하객들에게 음식물 등 접대를 처벌하는 법률(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1999년)


  ④ 지방자치단체장이 그 임기 중 국회의원 출마를 금지하는 법률(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결정(2000년)


  ⑤ 공무원 등의 채용시험 때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법률(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1999년)


  ⑥ 해외거주 동포를 지역에 따라 차별대우하고 있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 위헌결정(2002년)


  ⑦ 형사처벌을 받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재정적인 면)하는 법률(전직대통령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으로 해당 법률개정(1996년)


  ⑧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국회의원 등이 세비를 인상하고 보좌관을 늘리는 법령(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저지(1997년)


  ⑨ 검사의 부당한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과 그에 대한 위헌결정(취소결정)


  ⑩ 국민적 합의절차 없이 수도(首都)를 이전하는 법률(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결정(2004년) 등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당시 집권당의 기본정책의 큰 흐름을 바꾸고 한국헌법재판소의 존재의의를 국내외에 각인시켜준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수도이전법’ 이라고 함)의 위헌결정의 법리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3) 관습헌법과 수도이전의 위헌성


  ① 2003년 말 당시 집권당은 대한민국의 수도를 서울에서 남쪽지방(충청도)으로 옮기는 수도이전법을 제정하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도이전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나는 2004년 7월 각계각층의 국민 168명을 청구인으로 하여 위 법률의 위헌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주된 청구이유는 관습헌법 위반으로 인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등의 기본권 침해였다.  헌법재판소는 3개월의 심리 끝에 같은 해 10월 위 법률 전체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내렸다.


  ② 위헌의 핵심논거

  - 헌법적 절차(국민투표)를 거치지 아니한 수도이전은 관습헌법 위반 -


    ⓐ 우리 헌법전 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것은 조선시대 이래 600여 년 간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관한 당연한 규범적 사실이 되어 왔으므로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계속적 관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계속성), 이러한 관행은 변함없이 오랜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깨어진 일이 없으며(항상성),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개인적 견해 차이를 보일 수 없는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며(명료성), 나아가 이러한 관행은 오랜 세월간 굳어져 와서 국민들의 승인과 폭넓은 컨센서스를 이미 얻어(국민적 합의) 국민이 실효성과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는 국가생활의 기본사항이다. 


따라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여 온 헌법적 관습이며 우리 헌법조항에서 명문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명하고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


    ⓑ 이와 같이,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 새로운 수도 설정의 헌법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실효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헌법개정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수도를 충청권 일부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수도이전법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개정사항을 헌법보다 하위의 일반 법률에 의하여 개정하는 것이 된다. 


한편, 헌법 제130조에 의하면 헌법의 개정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하므로 국민은 헌법개정에 관하여 찬반투표를 통하여 그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수도이전법은 헌법개정사항인 수도의 이전을 헌법개정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지 단순법률의 형태로 실현시킨 것으로서 결국 헌법 제130조에 따라 헌법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이므로 동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③ 수도이전법 위헌결정의 의의

    ⓐ 헌법적 관행(헌법관습법)과는 별개로 불문헌법으로서의 관습헌법의 존재 및 그 성립요건을 명확히 하였다.

    ⓑ 국민의 기본권을 관습헌법상으로 까지 확대함으로써 기본권 보장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연 획기적 헌법판단이었다.